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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호모포비아

'쟤는 고추도 안 달렸나봐' 같은 표현은 남성 집단에 있어서 구성원 자격의 실추를 의미하는 최고의 욕설이 된다. 반대로 남성 집단에 매복해 있을지 모르는 '계집'에 대한 경계는 주체 위치로부터의 전락, 즉 '나도 언젠가 성적 객체화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의미한다. 때문에 남성 집단 사이에서는 '계집'에 대한 마녀사냥이 격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을 호모포비아라고 한다. 성적 주체로서 남성 집단이 가진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호모포비아는 필수불가결하다.-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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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 : 여성스러운 애들은 그쪽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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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는 남성을 보면 동성애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1 : 야, OO이는 하는 짓이 좀 소름 돋지 않냐?
: 왜 소름 돋아?
친구2 : 말하는 것도 그렇고, 손짓도 그렇고 여자애 마냥.
: 좀 사근사근하게 말할 수도 있고 그렇지.
친구1 : 아니, 좀 게이같지 않아?
친구2 : 말투도 징징거리고 애교까지 부려. 끼부린다고 해야 하나?
친구1 : 어ㅋㅋ. 좀 무서워. 이상한 것 같아. 너네도 OO이 오면 조심해라. 어느 순간..
일동 : 더러워...

남자들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학창시절에는 비 맞고 축구한 뒤에도 땀 냄새가 난다느니 유난을 떨어선 안 되고, 게임하면서는 간혹 욕설을 섞어가며 거친 언행을 보여줘야 합니다.
대학에 가서는 여자 하나 못 만나본 놈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고,
군대에서는 예민하고 계집애 같은 놈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각종 폭력과 권위주의, 위계중심질서에 침묵하거나, 심지어 내가 재생산해내기도 하면서요.

이번엔 위의 대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섬세한 손짓과 사근사근한 말투, 애교는 남자들이 경계해야 할 행동입니다. 대화에서처럼 ‘소름 돋는 놈’이 될 수 있거든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지만 남자가 하면 좀 이상합니다. 차라리 어깨를 주먹으로 퍽 치며 말하거나 좀 거칠게 말하는 게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 언행 하나하나에서도 어떤 경계를 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조심하는 거냐고요?

바로 ‘여성화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남성성’은 남자의 슬픈 운명이자 짐이죠. 섬세한 손짓과 사근사근한 말투, 애교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보일 수 있는 행동이 아닌 ‘여성적 기호’로 인식됩니다. 남자는 일생동안 무의식적으로라도 이런 여성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됩니다.

평생을 ‘여성화’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위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제법인걸!’이라는 칭찬이 돌아올 것입니다. 남자로부터 받는 칭찬이며, 이는 남성 세계 내 패권 게임에서 나를 상위에 올려놓는 중요한 평가입니다. 반면 운동을 싫어하고, 여자에게 쩔쩔매거나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자는 억압되고 배제됩니다. 그들은 ‘계집애같다’, ‘남자 맞냐?’와 같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즉, 남성의 세계인 ‘호모 소셜’에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나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호모 소셜’이란 남성 간의 유대 관계라고 정의합니다. ‘남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남자를 경계 밖으로 내모는 현상이 바로 '호모 포비아‘입니다.

그런데 왜 남자가 남자를 배제하는 걸까요?

호모 포비아를 통해 ’호모 소셜‘이 공고해지기 때문입니다. 치즈코는 호모 포비아와 여성 혐오가 ’호모 소셜‘을 가능케 한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남성으로 인정한 이들의 연대(호모 소셜)는,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과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함으로써 성립합니다. 남성성은 경계선의 관리와 끊임없는 배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서 ‘남성됨’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역으로 증명한다며, 치즈코는 ‘남성성의 허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남성의 세계‘를 구축하고 남성성이라는 것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비(非)남성적인 것을 배제해가는 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혐오를 당하고, 차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호모 포비아와 여성 혐오로 발현됩니다.

차별에는 최소 세 명이 필요하다
-일본 사회학자 사토 유이-

사토 유이 <차별론>

친구1과 친구2는 OO이의 비(非)남성성을 이야기하며, 서로는 남성성이라는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유대관계를 맺습니다. 일본의 사회학자 사토 유이는 <차별론>에서 ‘차별에는 최소 세 명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차별이란 ‘어떤 이를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이와 동일화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여자를 타자화 하면서, 또는 남성성의 경계를 흐리는 남자를 타자화 하면서 ‘남성’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싫다’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호모 포비아도 여성혐오와 마찬가지로 구조적인 차별인 셈입니다.

남성성을 흔드는 동성애 남성을 혐오하면서 ‘진짜 남성’을 구성한다

호모 포비아는 속성이 모호한 남성성이라는 것의 경계를 확고히 하려는 차별이라고 했습니다. 호모 포비아와 여성혐오로 생겨난 남성성이 건전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면서 만들어낸 남성성이기에 폭력적이고 권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삽입하는 자’와 ‘삽입당하는 자’를 구분지어 여성을 성적 객체에 머물게 하고, ‘남자다움’과 ‘남자답지 못함’을 구분지어 호모 소셜 내에서도 위계질서를 만들어냅니다. ‘여자애같이 왜 이렇게 예민해?’, ‘아직도 여자친구랑 안 잤어? 그거 달린 거 맞냐?’ 등의 언행은 폭력적이며, 차별적입니다. 여성을 객체화시키는 것은 물론 남자에게도 ‘남성성’이라는 허구의 굴레를 씌우는 말이죠.


간혹 사근사근하고 애교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공포영화를 보고 당당히 무서워하고 싶으신가요?
슬픈 소설을 읽고 눈물 흘리고 싶으신가요?
남자가 느끼는 이 모든 감정, 모두 정상적입니다.

반면 남자의 행동을 규정짓고, 게이/여성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모든 행동은 폭력적입니다.

‘남자라서’ 씌워진 모든 굴레, 과연 호모포비아/여성혐오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男 : 게이 그거 X꼬충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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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성애자라는 말을 들으면 항문 섹스가 떠오른다


친구1 : 야 그거 들었어? C 게이래.
: 와 진짜? 어쩐지 좀 그쪽 같았는데.
친구2 : C는 어느 쪽일까? 탑, 바텀? (*삽입 하는 쪽을 탑, 그 반대는 바텀이라 말합니다.)
친구1 : 그러게. 그거 하면 아프지 않을까.
: 그니까. 상상만해도 아프네
친구2 : 남자가 왜 바텀 같은걸 좋아할까? 이상해.

호모소셜(성적이지 않은 남성 연대)에 대한 콘텐츠가 끝나고 이제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에 대한 내용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콘텐츠입니다. 호모소셜에서의 질문들보다 한층 더 직접적인 질문들이 나옵니다. 아마 여기서 뒤로가기를 누르고 싶으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동성애라는 존재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 싫은, 눈을 감고 싶은, 모른 척하고 싶은,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식되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왜, 우리는 동성애를 보기 싫고, 눈을 감고 싶고, 모른 척하고 싶은,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걸까요? 아니, 우린 정말로 그렇게 느끼기는 하는 걸까요?

호모소셜과 호모섹슈얼(동성애)은 사실 구분하기 힘들다.

이성애자 남성을 기준으로 볼 때 호모소셜은 쉽게 말하자면 동경 또는 우정과 같은 심리입니다. “되고 싶다.”와 같은 심리가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지드래곤의 패션을 보면서 따라하거나, 축구선수 호날두를 보면서, ‘다시 태어나면 호날두’처럼하고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되고 싶다갖고 싶다가 쉽게 구분되는 건 아닙니다. 종종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지드래곤과 정형돈의 브로맨스를 본다면, 이 둘 사이에서 미디어가 그려내고 여러분(저와 포함한 대한민국 남성들도!)이 소비하는 방식을 봤을 때, 우정이라는 말로만 표현 할 수 있을까요? 미묘한 선을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하고 우리는 즐기고 있지 않던가요?

또 다른 예시로는 축구선수 호날두와 베일입니다. 베일이 호덕후(호날두 덕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둘이 같이 있는 사진들은 합성의 필수요소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합성 사진은 단지 우상 호날두에 대한 베일의 숭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베일이 호날두의 모든 걸 갖고 싶다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죠.

남성들은 ‘삽입당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로 동성애를 혐오한다

다시 원래의 대화로 돌아가 봅시다. 게이 하면 X꼬충이냐며 항문섹스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유를 얘기해봅시다. 분명히 게이는 탑도, 바텀도 있는데, 바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요? 

네 그렇습니다. 호모소셜한 사회에서 ‘진짜 남성’이자 ‘삽입하는 자’로서의 지위를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때문인 겁니다.

호모포비아가 사회에 어떻게 생겨나고 작동하는지, 치즈코의 이론을 통한 해석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References (1)
  • 우에노 치즈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男 : 여성스러운 애들은 그쪽 아냐?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Q.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는 남성을 보면 동성애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1 : 야, OO이는 하는 짓이 좀 소름 돋지 않냐?
: 왜 소름 돋아?
친구2 : 말하는 것도 그렇고, 손짓도 그렇고 여자애 마냥.
: 좀 사근사근하게 말할 수도 있고 그렇지.
친구1 : 아니, 좀 게이같지 않아?
친구2 : 말투도 징징거리고 애교까지 부려. 끼부린다고 해야 하나?
친구1 : 어ㅋㅋ. 좀 무서워. 이상한 것 같아. 너네도 OO이 오면 조심해라. 어느 순간..
일동 : 더러워...

남자들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학창시절에는 비 맞고 축구한 뒤에도 땀 냄새가 난다느니 유난을 떨어선 안 되고, 게임하면서는 간혹 욕설을 섞어가며 거친 언행을 보여줘야 합니다.
대학에 가서는 여자 하나 못 만나본 놈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고,
군대에서는 예민하고 계집애 같은 놈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각종 폭력과 권위주의, 위계중심질서에 침묵하거나, 심지어 내가 재생산해내기도 하면서요.

이번엔 위의 대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섬세한 손짓과 사근사근한 말투, 애교는 남자들이 경계해야 할 행동입니다. 대화에서처럼 ‘소름 돋는 놈’이 될 수 있거든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지만 남자가 하면 좀 이상합니다. 차라리 어깨를 주먹으로 퍽 치며 말하거나 좀 거칠게 말하는 게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 언행 하나하나에서도 어떤 경계를 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조심하는 거냐고요?

바로 ‘여성화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남성성’은 남자의 슬픈 운명이자 짐이죠. 섬세한 손짓과 사근사근한 말투, 애교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보일 수 있는 행동이 아닌 ‘여성적 기호’로 인식됩니다. 남자는 일생동안 무의식적으로라도 이런 여성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됩니다.

평생을 ‘여성화’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위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제법인걸!’이라는 칭찬이 돌아올 것입니다. 남자로부터 받는 칭찬이며, 이는 남성 세계 내 패권 게임에서 나를 상위에 올려놓는 중요한 평가입니다. 반면 운동을 싫어하고, 여자에게 쩔쩔매거나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자는 억압되고 배제됩니다. 그들은 ‘계집애같다’, ‘남자 맞냐?’와 같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즉, 남성의 세계인 ‘호모 소셜’에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나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호모 소셜’이란 남성 간의 유대 관계라고 정의합니다. ‘남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남자를 경계 밖으로 내모는 현상이 바로 '호모 포비아‘입니다.

그런데 왜 남자가 남자를 배제하는 걸까요?

호모 포비아를 통해 ’호모 소셜‘이 공고해지기 때문입니다. 치즈코는 호모 포비아와 여성 혐오가 ’호모 소셜‘을 가능케 한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남성으로 인정한 이들의 연대(호모 소셜)는,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과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함으로써 성립합니다. 남성성은 경계선의 관리와 끊임없는 배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서 ‘남성됨’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역으로 증명한다며, 치즈코는 ‘남성성의 허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남성의 세계‘를 구축하고 남성성이라는 것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비(非)남성적인 것을 배제해가는 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혐오를 당하고, 차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호모 포비아와 여성 혐오로 발현됩니다.

차별에는 최소 세 명이 필요하다
-일본 사회학자 사토 유이-

사토 유이 <차별론>

친구1과 친구2는 OO이의 비(非)남성성을 이야기하며, 서로는 남성성이라는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유대관계를 맺습니다. 일본의 사회학자 사토 유이는 <차별론>에서 ‘차별에는 최소 세 명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차별이란 ‘어떤 이를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이와 동일화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여자를 타자화 하면서, 또는 남성성의 경계를 흐리는 남자를 타자화 하면서 ‘남성’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싫다’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호모 포비아도 여성혐오와 마찬가지로 구조적인 차별인 셈입니다.

남성성을 흔드는 동성애 남성을 혐오하면서 ‘진짜 남성’을 구성한다

호모 포비아는 속성이 모호한 남성성이라는 것의 경계를 확고히 하려는 차별이라고 했습니다. 호모 포비아와 여성혐오로 생겨난 남성성이 건전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면서 만들어낸 남성성이기에 폭력적이고 권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삽입하는 자’와 ‘삽입당하는 자’를 구분지어 여성을 성적 객체에 머물게 하고, ‘남자다움’과 ‘남자답지 못함’을 구분지어 호모 소셜 내에서도 위계질서를 만들어냅니다. ‘여자애같이 왜 이렇게 예민해?’, ‘아직도 여자친구랑 안 잤어? 그거 달린 거 맞냐?’ 등의 언행은 폭력적이며, 차별적입니다. 여성을 객체화시키는 것은 물론 남자에게도 ‘남성성’이라는 허구의 굴레를 씌우는 말이죠.


간혹 사근사근하고 애교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공포영화를 보고 당당히 무서워하고 싶으신가요?
슬픈 소설을 읽고 눈물 흘리고 싶으신가요?
남자가 느끼는 이 모든 감정, 모두 정상적입니다.

반면 남자의 행동을 규정짓고, 게이/여성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모든 행동은 폭력적입니다.

‘남자라서’ 씌워진 모든 굴레, 과연 호모포비아/여성혐오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