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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소셜 속의 그 여자

“진짜 여자는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아." A양이 말한다.” “근데 너는 좀 특별하잖아.” 남자가 인정한다. “응. 나는 ‘평범’한 여자는 아니지.” 그녀는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그러나 이 ‘예외’를 통해 ‘평범’한 여성에 대한 멸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호모소셜한 남성 공동체에 명예남성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그것은 표면적인 인정에 불과하며 같은 ‘동지’로 여겨지는 일은 결코 없다. 마치 백인 중산층 사회에 들어간 흑인과도 같다.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하다’ 中

Cristian Newman on Unsplash

女 : 여자는 이래서 안 돼.

Photo by kohlmann sascha on unsplash Photo by kohlmann sascha on Unsplash

Q. ‘이래서 여자는 안 돼'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A: 철수야, 나 이거 너무 무거워서 못 들겠어. 대신 좀 들어줄래?
(한 쪽 구석에서)
B: 쟤 또 저러네. 여우같은 X, 진짜 재수 없다.
C: 별로 무겁지도 않던데 저걸 시키네.
B: 끼 부리는 거지. 연약한 척, 가녀린 척하면서.
C: 나도 여자지만, 여자들이 이래서 안 된다니까?

청춘남녀 여럿이 모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공간이라면 한번쯤은 들아봤을 대화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이 있죠. 위의 대화에서 A,B,C는 모두 여성입니다. '나도 여자지만, 여자는 이래서 안 돼.' C는 본인이 여성임에도 여성에 대해 남 말하듯, 독특한 존재를 보듯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타자화라고 합니다.) 본인이 여성임에도 '여성'을 타자화하고 있는 거죠.

앞선 글들에서 뉴스퀘어와 함께 우리 사회가 호모소셜한 사회라는 걸 계속 공부해왔습니다. 호모소셜한 사회에선 여성에게 여성성이 강요되는 것도 공부했죠. 누가 강요하는 걸까요? 보통 우리는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성을 강요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호모셜한 사회에서 여성에게 여성성을 강요하는 건 사회, 시스템, 남성, 그리고 심지어 여성 스스로도 마찬가지라고 치즈코는 얘기합니다. 바로 위의 대화처럼요.

1. 넌 '보통'여자들이랑은 좀 달라.

위의 대화에서, C는 스스로가 여성임에도, '여자는 이래서 안 돼'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욕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죠.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치즈코는 이를 바로 '예외'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짜 여자는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아." A양이 말한다.

“근데 너는 좀 특별하잖아.” 남자가 인정한다.

“응. 나는 '평범’한 여자는 아니지.” 그녀는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그러나 이 ‘예외’를 통해 ‘평범’한 여성에 대한 멸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호모소셜한 남성 공동체에 명예남성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그것은 표면적인 인정에 불과하며 같은 ‘동지’로 여겨지는 일은 결코 없다.

마치 백인 중산층 사회에 들어간 흑인과도 같다.

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하다

위 인용문은 콘텐츠의 서론을 통해서 한번씩을 읽어보셨을 겁니다. 이 인용문이 바로 '예외' 전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C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 여자들은 안 돼'에서 자신은 예외라는 겁니다. 일반적인 여성들을 '타자화'해서 자신을 지켜내는 거죠.

예외가 되는 방법은 '명예 남성'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득바득 남자보다 술 잘 마시는 여자, 남자들의 야한 농담에도 웃는 쿨한 여자가 되어 살아남고자 합니다. 심지어 다른 여성들을 타자화하기도 합니다. 자신은 다른 여성들과는 '좀 다른 여자'가 됨으로써 호모 소셜에서 살아남는 것이죠.

앞선 콘텐츠에서 언급했던 부분인데요. 남성들 사이에서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남성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여성성으로 부여되는 까탈스러움, 술자리에서 먼저 떠나는 것, 남자들에게 힘든일을 부탁하는 것 등등을 하지 않고 남성과 견주어도 이겨내는 예외적 여성이 되는 겁니다.

이 예외를 통해 차별은 지속되고 재생산 됩니다. 여성성이라는 성질을 규정하고, 이를 갖고 있는 평범한 여성은 차별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에겐 '명예 남성'이라는 상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2. 예쁜 애들 특징.jpg

다른 한 가지는 추녀전략입니다. 예외적 여성이 되는 법의 첫번째는 남성같은 여성이 되는 법이었습니다. 다른 한가지인 추녀전략은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이 되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 남성들에게 인기 없는 여성이 되는 방법이죠.

우리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젠더(gender), 사회학적 성은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닙니다. 여성이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여성스럽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쁘고, 참하고, 때로는 섹시해야 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려야 합니다. 그게 여성의 조건입니다.

사회속에서 예쁜 여성에 대해선 선입견이 아직 존재합니다. 재수없다. 싸가지없다. 남자를 이용해서 편하게 산다. 예쁜 거 아는데 티 안내려는 척한다. 친절한척 하는데 거리감 느껴진다. 등등이죠. 물론 요즘엔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요.

다시 말하자면 '여성스러운' 여성일 수록 혐오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혐오라는 말이 강하긴 하지만, 결국은 욕먹을 대상이고, 비난받을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크게 틀린말은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여성, 아마도 90퍼센트 이상의 여성은 자신의 외모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저렇게 예쁘진 않은 여성으로 정의해서, 여성성에 대한 얘기들에서 자신을 타자화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치즈코에 따르면 이를 '추녀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쟨 예쁘니까 그래'라는 말로 자신을 타자화하고 여성혐오로 부터 한발짝 벗어나는 겁니다.

결국 여성은 남성 호모소셜의 경계에 위치하게 됩니다. 호모소셜한 사회의 2등 시민으로 존재를 강요받습니다. 그래서 '예외'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명예남성 혹은 추녀가 되기를 자처하는 거죠. 자신을 예외에 두고 다른 '평범한 여성'들을 타자화해서 호모소셜 속에서의 억압을 전가하는 겁니다. 결국 호모소셜한 사회내에선 여성도 여성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모소셜 사회에서 어떻게 여성이 여성 혐오에 동참하게 되는 지, 이해되시나요?


女 : 못생겼으면 공부라도 해_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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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외모는 글렀으니 공부라도 잘하자고 농담한 적 있다


[상황A : 여학생들의 단체톡]

A : 아, 기말 공부하기 열라 싫어.
B : 얘들아, 알지? 우린 공부라도 잘해야 돼... 공부라도..!
A : ㅋㅋㅋㅋㅋㅋㅋㅋ
C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 : C는 좀 덜 해도 됨. 부럽다ㅜㅜ
C: 아니야... 이번에도 망하면 나 휴대폰 뺏길 듯
B : 내가 네 얼굴이었으면 공부 안했어ㅋㅋㅋ 우리 담임도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할 때 꼭 내 쪽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
A : 헐 나한테도! B야 우린 공부라도 잘 하자..^^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외모가 가장 중요하다

<제2의 성>의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어렸을 적부터 미모의 여동생과 비교당하며 "너같이 못생긴 애는 공부라도 잘 해야지" 라는 말을 들어왔다고 합니다. ‘너는 공부라도 잘 해야 돼’의 맥락에는 ‘못생겼으니까’, 즉 외모의 조건이 주요하게 작용합니다. 외모가 부족하니 공부라도 잘해야 된다는 말이 어찌 들으면 맞는 말, 당연한 말 같기도 합니다. 외모도 스펙인 사회에서 외모라는 스펙이 조금 뒤쳐진다면, 다른 능력으로 보완을 해야 함이 합리적이니까요.

반면 ‘너는 공부 안 해도 돼’ 라는 말은 어떨까요?
이 대사의 앞에는 ‘너는 예쁘니까’ 생략되어 있습니다. 흔히 말해 예쁘고 여성성이 높은 여학생이 들을 만한 얘기입니다. 이 경우에는 ‘공부라도 잘 해야 돼’라는 말과 달리 칭찬 내지는 기분 좋은 소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미 외모 스펙이 충족되었으니까, 그 이상의 능력과 재력 등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합리적인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남학생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일이 비교적 적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외모가 출중한 소년에게도 ‘넌 잘생겼으니까 공부 안 해도 되겠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모’의 우열로 생겨나는 차별 문제가 아니라 젠더 문제에 기인합니다. 또 다른 상황극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상황B : 남학생들의 대화]

A : 아까 걔 얼굴 봤냐?
B : 누구? 여자 애?
A : 응ㅋㅋㅋ장난 아니던데? 몸매도..
B : 맞아. 난 언제 저런 애 한번 만나보냐.
A : 성공하면 돼. 수입 차 몰고 나타나면 OK일 거야.
B : 그래. 남자는 능력이지. 우리도 성공해서, 예쁜 여자 만나자.


‘예쁘면 공부 안 해도 돼’, ‘못생겼으면 공부라도 잘 해야지’는 ‘호모소셜’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네, 또 호모소셜 이야기입니다. 호모소셜은 남성이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만듦으로써 남성끼리의 유대를 형성해 남성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연스레 여성의 가치는 ‘소유물로서의 가치’가 되어버립니다. 그 가치의 중심에는 ‘외모’가 있고요. 아주 먼 옛날부터 여성에게 ‘외모 가꾸기’가 중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에게 호모소셜에서 살아남는 일은 남자들에게 여성으로서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화장이나 패션 등 여성성 자원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요즘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아가 능력과 재력을 겸비한 남자와 결혼해 그 남성의 트로피로서 살아간다면 그럭저럭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성이라는 자원은 스스로 획득하는 가치가 아니라 남성에게 선택되는 것에 의해 부여되는 가치입니다. 호모소셜에서 비교적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살 수는 있겠지만, 주체적인 삶은 아닙니다. 영원히 타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죠.

여자가 아닌 여자

<여성 혐오를 혐호한다>의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자는 ‘성녀’와 ‘창녀’로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즉 예쁜 여자만이 ‘여성’적인 여자인 것이며, ‘성녀’는 어머니, 누나 등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성실하고 지고지순한 여성을 말하는 것이며, ‘창녀’는 쾌락용 여성을 말합니다. 남성의 ‘선택’을 받을 여자만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못생긴 여자는 여성이 아닌걸까요? 적어도 호모소셜에서는 그렇습니다. ‘추녀’는 예쁘지 않은 여성(모든 동화의 여자 주인공 친구나 시녀쯤으로 등장하는 여자) 또는 ‘아줌마’, ‘할머니’로 분류되는 여자를 말합니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 ‘가슴 없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 ‘나이든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

남자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어왔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예외적인 여자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공부 잘 하고, 돈 잘 벌고, 능력 있는’ 여자입니다. 호모소셜에서도 상위층에 있을 법한 조건입니다.

왜 이들은 ‘예외적인 여자’일까요? 능력 있는 남성이 사회에서 성공하듯, 여성 역시 능력과 재력으로 호모소셜의 주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예남성’이라는 말이 있듯, 그들은 여성성을 버려야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예외적인 여자로 거듭나야 하는 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성공의 길로 들어서진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d...


References (1)
  • 은행나무 우에노 치즈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女 : 못생겼으면 공부라도 해_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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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내 직원들의 대화]
여자1 : 여기 회사야. 선배들이 커피 좀 타오라 했다고 하루종일 그 표정이면 어떡해?
여자2 : 그러니까요. 여기 회사인데 제가 왜 매일 손님 올 때마다 커피를 배달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신입사원이 저 말고 남자 다섯이 더 있는데.
여자1 : 나도 다 그런거 견디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여자2 : 그리고 장기자랑은 또 왜 해야 해요? 제가 왜 야한 옷을 입고 춤을 춰요?
여자1 : 그건 내가 너 특별히 배려해서 넣어준거야. 타 부서 신입들에 비해서 네가 예쁘장하게 생겼으니까, 간부들도 다 참여하는 운동회에서 눈도장 찍히면 좋잖아. 이렇게 야망이 없어서야 지금 내 자리까지 버티기나 하겠어?

과거에는 ‘시집’가는 것이야말로 여자의 성공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반면 공부는 여성성 자원이 부족해 선택받지 못할 이들의 차선이라 여겨졌습니다. 예쁘다는 것은 ‘여성적 자원’으로, 공부는 ‘비(非)여성적 자원’으로 여겨지며, 예쁘지 않은 여자는 ‘비(非)여성’으로서의 생존길을 모색하라는 의미에서 ‘못생겼으니 공부라도 하라'는 농담이 생겨난 것이라고 치즈코는 말합니다.

하지만 여성이 그들의 능력만으로 인정받기 힘든 사회입니다. 외모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난 요즘 ‘비(非)여성’이 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여성성의 잣대로 평가를 받고는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나 능력은 부족한 여성성을 보충하는 부차 조건 정도에 머물죠. 호모소셜이 기득권을 형성하는 사회에서 위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남성성이 부족한 남자와 여자를 끊임없이 배제해야 합니다. 이때문에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 여성성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외적’ 여자'로 거듭나면서요.

정말로 그런지 밑에서 조금 더 함께 사례들을 보겠습니다.

왜 ‘예외적’이라고 하는 걸까요?

흔히 '명예남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능력 있는 여자는 왜 여성으로서 성공한 게 아니고, 남성으로서 성공한 것으로 봐야하는 걸까요? 그들이 여성이 아닌 남성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에서는 젠더적 의미의 여성성을 버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젠더적 여성성이란 온화하고, 부드럽고, 상냥하고, 가정적이고, 아이를 잘 돌보는, 그런 것들을 의미합니다(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여성적인 것'으로 구분짓는 것들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이들은 걸림돌이 될뿐입니다. 그래서 아득바득 남자보다 술 잘 마시는 여자, 남자들의 야한 농담에도 웃는 쿨한 여자가 되어 살아남고자 합니다. 심지어 다른 여성들을 타자화하기도 합니다. 자신은 다른 여성들과는 '좀 다른 여자'가 됨으로써 호모 소셜에서 살아남는 것이죠.

경향신문은 'ㄱ'대학 교육학과 91학번 남녀들의 졸업 이후 행적을 추적한 바 있습니다. 기사에 의하면 남녀의 취직률은 비슷했지만, 결혼 이후에도 직장에 다니고 있는 여성은 단 세 명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직장을 그만 둔 이유에는 물론 결혼, 임신, 육아의 덫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사회 생활과 가정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그들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회사를 포기한 것입니다. 남편보다 돈을 잘 벌어도요.

설사 '여성성'이라 불리는 것들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호모 소셜에의 적응,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진짜 남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대단히 남성 중심적인 조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ㄱ'대학 여자 졸업생들의 설명입니다. 아무리 대학을 나오고 자격증이 있어도 그들은 면접관에게 '비서 할 생각은 없냐'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현장 업무에도 자신 있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에 그들은 좌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현대에도 달라진 것 없습니다. 섹시댄스를 춰야 하는 여자 간호사, 성추행을 당한 여검사는 비슷한, 아니 더 심한 좌절을 느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상이 해마다 여직원 골프대회를 열고 대회에 참석한 여직원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져왔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객체화 당했습니다.

객체화란 사회의 주연이 아닌 도구적, 보조적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뜻이죠. 영화속에 회장님과 여직원 골프대회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면, 여직원들은 분명 주연은 아니겠죠.

그들 개인의 성격과 실력과 능력은 지워져버리는 사회에서 그들이 한 개인으로서 성공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유리 천장을 깬 여성

'유리 천장을 깬 여성!' 종종 신문 기사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최근 주목받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1세대 헬기 조종사이자 여성 첫 국가보훈처장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커리어만 확실하다면 여성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였던 걸까요?

피우진 처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의 자서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는 군대 내 성희롱·성차별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여군은 결코 치마를 내세우지 않았지만, 현실은 여군에게 치마를 강요한다”며 마치 접대부와 같은 취급을 당하는 여군의 현실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조직에서 남성의 유대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아무리 '명예 남성'이 되어봤자 접대 문화에까지 낄 수 없는 여성은 객체가 돼버리고 맙니다.

과정이 어떠했든, 결과적으로 유리천장을 깬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이 있긴 합니다. 허나 동일한 위치까지 올라간 남자만큼이나 순수한 인정을 받는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여자가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의 이미지를 왜곡해 받아들입니다.

단적인 예로 중국의 ‘剩女(sheng nu 셩뉘)’라는 단어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골드미스’라는 단어와 같은 뜻이지만, 직역하면 ‘leftover woman', 즉 ’남은 여성‘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고, 학력이 높고, 수입이 많아서 ’三高剩女‘라고도 합니다. ’남은 여성‘이라는 단어는 능력과 재력을 갖춘 여성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남자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어감을 줍니다. 여성을 타자화한 언어이자 남성주의적 담론이 반영된 것입니다. 호모소셜에서 인정하는 여자의 자원은 ’여성성(외모, 아내로서의 성숙함 등)‘ 뿐이며, 능력과 재력은 남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수준의 명문여대들이 ‘대학’이라는 이미지보다 ‘여성’이 모인 곳으로 먼저 인식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수재(秀才)가 모인 곳이 아닌 ‘좋은 아내감, 며느리감’이 모인 곳으로 대상화되곤 합니다.

여성으로서, 타자화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성공한다는 건

그렇다면 여성으로서, 타자화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성공한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요? 바로 '여성으로서'라는 말이 사라지는 사회일 것입니다. 젠더와 섹스를 떠나서 개인이 있는 그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정희진 교수는 '여성 정치인 시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여성 정치인 시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고 합니다. 남성 정치인은 지역, 정치적 입장, 경력, 학연 등으로 분류되는 데 반해 여성은 성별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리는 사회는 여성이 소수자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성공한 것이 아닌, 개인의 능력이 있는 그대로 평가받는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못생겼으니까 공부라도 잘 해야 돼’라는 말, 가벼운 농담으로 쓰이기엔 너무 많은 맥락이 숨어있었습니다. 예쁘니까 그것을 무기로 삼으라는 말, 그게 안 되니 공부로라도 살아남으라는 말, 이 모두가 여자 그 자체로 주체적인 여성으로 만들진 못하니까요. 어떻게 해도 호모소셜 안의 약자로 편입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이기에, 이제는 이 두 가지 호모소셜의 프레임에서 해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女 : 여자는 이래서 안 돼.

Photo by kohlmann sascha on unsplash Photo by kohlmann sascha on Unsplash

Q. ‘이래서 여자는 안 돼'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A: 철수야, 나 이거 너무 무거워서 못 들겠어. 대신 좀 들어줄래?
(한 쪽 구석에서)
B: 쟤 또 저러네. 여우같은 X, 진짜 재수 없다.
C: 별로 무겁지도 않던데 저걸 시키네.
B: 끼 부리는 거지. 연약한 척, 가녀린 척하면서.
C: 나도 여자지만, 여자들이 이래서 안 된다니까?

청춘남녀 여럿이 모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공간이라면 한번쯤은 들아봤을 대화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이 있죠. 위의 대화에서 A,B,C는 모두 여성입니다. '나도 여자지만, 여자는 이래서 안 돼.' C는 본인이 여성임에도 여성에 대해 남 말하듯, 독특한 존재를 보듯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타자화라고 합니다.) 본인이 여성임에도 '여성'을 타자화하고 있는 거죠.

앞선 글들에서 뉴스퀘어와 함께 우리 사회가 호모소셜한 사회라는 걸 계속 공부해왔습니다. 호모소셜한 사회에선 여성에게 여성성이 강요되는 것도 공부했죠. 누가 강요하는 걸까요? 보통 우리는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성을 강요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호모셜한 사회에서 여성에게 여성성을 강요하는 건 사회, 시스템, 남성, 그리고 심지어 여성 스스로도 마찬가지라고 치즈코는 얘기합니다. 바로 위의 대화처럼요.

1. 넌 '보통'여자들이랑은 좀 달라.

위의 대화에서, C는 스스로가 여성임에도, '여자는 이래서 안 돼'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욕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죠.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치즈코는 이를 바로 '예외'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짜 여자는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아." A양이 말한다.

“근데 너는 좀 특별하잖아.” 남자가 인정한다.

“응. 나는 '평범’한 여자는 아니지.” 그녀는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그러나 이 ‘예외’를 통해 ‘평범’한 여성에 대한 멸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호모소셜한 남성 공동체에 명예남성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그것은 표면적인 인정에 불과하며 같은 ‘동지’로 여겨지는 일은 결코 없다.

마치 백인 중산층 사회에 들어간 흑인과도 같다.

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하다

위 인용문은 콘텐츠의 서론을 통해서 한번씩을 읽어보셨을 겁니다. 이 인용문이 바로 '예외' 전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C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 여자들은 안 돼'에서 자신은 예외라는 겁니다. 일반적인 여성들을 '타자화'해서 자신을 지켜내는 거죠.

예외가 되는 방법은 '명예 남성'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득바득 남자보다 술 잘 마시는 여자, 남자들의 야한 농담에도 웃는 쿨한 여자가 되어 살아남고자 합니다. 심지어 다른 여성들을 타자화하기도 합니다. 자신은 다른 여성들과는 '좀 다른 여자'가 됨으로써 호모 소셜에서 살아남는 것이죠.

앞선 콘텐츠에서 언급했던 부분인데요. 남성들 사이에서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남성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여성성으로 부여되는 까탈스러움, 술자리에서 먼저 떠나는 것, 남자들에게 힘든일을 부탁하는 것 등등을 하지 않고 남성과 견주어도 이겨내는 예외적 여성이 되는 겁니다.

이 예외를 통해 차별은 지속되고 재생산 됩니다. 여성성이라는 성질을 규정하고, 이를 갖고 있는 평범한 여성은 차별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에겐 '명예 남성'이라는 상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2. 예쁜 애들 특징.jpg

다른 한 가지는 추녀전략입니다. 예외적 여성이 되는 법의 첫번째는 남성같은 여성이 되는 법이었습니다. 다른 한가지인 추녀전략은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이 되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 남성들에게 인기 없는 여성이 되는 방법이죠.

우리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젠더(gender), 사회학적 성은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닙니다. 여성이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여성스럽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쁘고, 참하고, 때로는 섹시해야 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려야 합니다. 그게 여성의 조건입니다.

사회속에서 예쁜 여성에 대해선 선입견이 아직 존재합니다. 재수없다. 싸가지없다. 남자를 이용해서 편하게 산다. 예쁜 거 아는데 티 안내려는 척한다. 친절한척 하는데 거리감 느껴진다. 등등이죠. 물론 요즘엔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요.

다시 말하자면 '여성스러운' 여성일 수록 혐오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혐오라는 말이 강하긴 하지만, 결국은 욕먹을 대상이고, 비난받을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크게 틀린말은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여성, 아마도 90퍼센트 이상의 여성은 자신의 외모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저렇게 예쁘진 않은 여성으로 정의해서, 여성성에 대한 얘기들에서 자신을 타자화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치즈코에 따르면 이를 '추녀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쟨 예쁘니까 그래'라는 말로 자신을 타자화하고 여성혐오로 부터 한발짝 벗어나는 겁니다.

결국 여성은 남성 호모소셜의 경계에 위치하게 됩니다. 호모소셜한 사회의 2등 시민으로 존재를 강요받습니다. 그래서 '예외'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명예남성 혹은 추녀가 되기를 자처하는 거죠. 자신을 예외에 두고 다른 '평범한 여성'들을 타자화해서 호모소셜 속에서의 억압을 전가하는 겁니다. 결국 호모소셜한 사회내에선 여성도 여성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모소셜 사회에서 어떻게 여성이 여성 혐오에 동참하게 되는 지, 이해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