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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언제부터 어떻게?

20세기 이후의 기본소득 이론과 역사

20세기 이후의 기본소득은 기존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논의됩니다, 기존엔 빈곤 퇴치등이 주요 목적이었다면 이후에는 복지병에 대한 해소나 노동 자체에 대한 고민이 주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철학적 논의와 제안이 있었는지 함께 알아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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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오늘날의 기본소득의 출발점, 버틀런드 러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의 시기는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던 때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틀런드 러셀도 이 시기에 사회주의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저서 <자유에의 길>에서 ‘최소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필수품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약간의 소득을 모두에게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공동체가 유용하다고 인정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주자."

버틀런드 러셀, <자유에의 길>

러셀이 주장했던 ‘필수품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기본소득의 기본 조건인 ‘충분성’에 해당하는 개념의 뿌리가 됩니다. 이후에도 사회주의 사상의 대두와 함께 기본소득이 논의 됩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닥쳐오는 통에 논의가 한동안 끊기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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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보수의 기본소득이란, 밀턴 프리드먼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의 새로운 중심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1960년대 시민권 운동이 절정을 이뤘습니다. 경제학계에선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각광받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경제정책은 케인즈 주의에 따라 설계되었습니다. 케인즈 주의는 시장에 정부가 적절히 개입해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학파입니다. 하지만 케인즈 주의는 오일쇼크, 영국병(기업 국유화, 고복지, 고임금 등으로 저효율이 생긴 것을 뜻합니다) 등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에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케인즈 주의의 한계를 비판합니다.

프리드먼 또한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습니다. 음의 소득세는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소득세율, 소득세 면제기준, 정부 보조금비율을 적용해 면제기준에 미달한 소득자는 그 차액에 비례해 정부 보조금을 받고 넘으면 세금을 내는 제도입니다.

어찌 보면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는 프리드먼이 이 같은 제도를 주장한 건 이상합니다. 돈을 주는 기본소득제는 사회주의적 정책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리드먼이 이 제도를 주장한 이유는 복지제도가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복지제도를 모두 없애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쥐어주자는 겁니다. 그러면 복지제도에 관여하는 정부의 영역도 줄어 자연스럽게 '작은 정부'가 될 것이라는 게 프리드먼의 생각이었습니다. 당장 사람이 죽어가는데 복지를 위한 돈을 안 쓸 수 없는 노릇이니, 효율을 늘리기 위해 복지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불필요한 조직을 모두 없애버리자는 거죠.

지금까지의 기본소득 논의와는 방향부터가 다른 색다른 시선입니다. 이는 최근까지 보수파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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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전세계로 확장되는 시작점,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시작한 미국의 기본소득 논의는 앞선 논의와 조금 다른 양상입니다. 기본소득은 본디 복지를 '잘' 해보자는 목적을 갖고 있었죠. 그러나 프리드먼 이후의 논의는 ⓵ 프리드먼처럼 '작은 정부'를 만들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⓶ 기술혁신이 몰고 온 대량실업의 대책을 위해 ⓷ 기존처럼 복지를 좀 더 제대로 해보기 위해 등으로 다양화 됩니다.

유럽에서는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복지국가 체제에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 1986년 기본소득 유럽네트워크가 결성되었습니다. 2004년엔 이 조직이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로 확대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기본소득은 수세기에 걸쳐 조금씩 변화해 온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다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죠. 기본소득이 주목 받은 이유는 각 시대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도둑질 한 이가 교수형에 처해지던 시대에는 너무 가혹한 법 때문에 무어가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프랑스 혁명시기엔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지구에 대한 권리를 생각하며 이가 많아지면서 푸리에의 아이디어가 탄생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에는 복지의 비효율을 지적하며 프리드먼의 아이디어가 나왔죠.

뉴스퀘어는 시대 순으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알아봤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각 시대별 아이디어, 여러분은 공감하시나요?

20세기 이전의 기본소득 이론과 역사

빈곤은 인류 역사에 항상 존재했습니다. 빈곤을 타개할 방법도 여러 가지 형태로 제안되어왔죠. 기본소득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기본소득은 갑자기 생겨난 제도가 아닙니다. 기본소득이 나오기까지 조금 다른 형태의 제안들이 존재해왔고 수세기에 걸쳐 지금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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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기본소득의 시작이라 불리는, 토마스 무어

"훔치는 것 말고는 목숨을 부지할 다른 어떤 방법도 없는 사람은 아무리 가혹한 형벌로도 막지 못한다. 절도범들을 끔찍한 형벌로 다스리고 있지만 그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약간의 생계수단을 제공해서, 목숨 걸고 훔치지 않을 수 없는 절실한 상황을 면하게 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다."

토마스 무어, <유토피아>

너무도 당연한 무어의 말은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합리적 정책'으로 구상되는 첫 시발점이었습니다. 무어는 영국인입니다. 무어가 유토피아를 쓰던 당시 영국은 절도범을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무어는 이 방식이 옳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음식을 훔쳤는데 죽임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잡히는 대로 족족 교수형에 처했는데도, 범죄율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무어의 아이디어는 '구빈법'으로 구체화 됩니다. 당시에는 빈민구제를 지역 교회에서 알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헨리 8세가 교회의 재산을 몰수해버렸죠. 교회는 돈이 없어 빈민구제를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각 교회 별로 세율을 정해 강제로 성금을 할당했습니다. 당시엔 기독교가 국교였으니 모든 사람이 교회에 다녔죠. 성금이 일종의 세금이 된 셈입니다. 교회는 성금을 내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공공 부조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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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지구는 우리 모두의 것, 토마스 페인

토마스 페인은 영국에서 태어나,미국에서 작가생활을 했으며 프랑스에서 국회의원을 한 특이한 사람입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국회의원이 되었죠. 페인은 국회의원 시절 기본소득의 뼈대가 되는 제도를 제안합니다.

"지구상의 자연 상태의 땅은 인류의 공동재산이다. 이 땅을 개발해서 사유화한 사람이 갖는 권리는 딱 그 사람이 개발한 만큼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는 본디 인류의 공동재산이었던 원래의 땅을 사용한 비용을 공동체에 지불해야 한다."

토마스 페인, <농지법과 농지독점에 반대하는 농지 정의(正義)>

지구는 본디 공동재산이라는 페인의 말은 당시 받아 들여지진 않았으나 그의 제안은 사회주의의 확산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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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푸리에 주의의 시작, 샤를 푸리에

샤를 푸리에는 프랑스의 사회주의 작가입니다. 푸리에는 페인의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킵니다. 수렵 채집 시대엔 모든 사람이 자연을 공유했습니다. 그 자연으로부터 먹을 것을 얻어 생계를 이어갔죠. 문명이 생기며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누군가는 땅을 가졌고 누군가는 갖지 못하게 된 거죠. 푸리에는 이것을 "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문명에 의해 땅을 빼앗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에 땅을 가진 사람들이 '토지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푸리에의 이같은 아이디어는 후대에 큰 영향을 줍니다. 비슷한 유형의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학파를 '푸리에 주의자'라고 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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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푸리에 주의자 + '공리주의'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

"분배를 할 때는 노동을 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생계를 위한 최소치가 먼저 할당된다. 생산물의 나머지는 노동, 자본, 재능이라는 세 요소들 사이에서 사전에 결정되는 특정한 비율로 분배된다."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의 원리>

밀 또한 기본소득의 근본이 되는 최소소득이라는 개념을 주창했습니다. 밀은 푸리에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푸리에 주의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사회가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의 '최소한은' 먼저 모두의 생계를 위해 할당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쉽게도 20세기 이전의 기본소득 논의는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고 끊겨버립니다. 2차대전이 일어나며 모든 지구인이 기존의 논의를 할 정신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스토리에서는 비교적 근현대에 논의된 기본소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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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후의 기본소득 이론과 역사

20세기 이후의 기본소득은 기존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논의됩니다, 기존엔 빈곤 퇴치등이 주요 목적이었다면 이후에는 복지병에 대한 해소나 노동 자체에 대한 고민이 주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철학적 논의와 제안이 있었는지 함께 알아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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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오늘날의 기본소득의 출발점, 버틀런드 러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의 시기는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던 때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틀런드 러셀도 이 시기에 사회주의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저서 <자유에의 길>에서 ‘최소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필수품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약간의 소득을 모두에게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공동체가 유용하다고 인정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주자."

버틀런드 러셀, <자유에의 길>

러셀이 주장했던 ‘필수품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기본소득의 기본 조건인 ‘충분성’에 해당하는 개념의 뿌리가 됩니다. 이후에도 사회주의 사상의 대두와 함께 기본소득이 논의 됩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닥쳐오는 통에 논의가 한동안 끊기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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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보수의 기본소득이란, 밀턴 프리드먼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의 새로운 중심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1960년대 시민권 운동이 절정을 이뤘습니다. 경제학계에선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각광받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경제정책은 케인즈 주의에 따라 설계되었습니다. 케인즈 주의는 시장에 정부가 적절히 개입해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학파입니다. 하지만 케인즈 주의는 오일쇼크, 영국병(기업 국유화, 고복지, 고임금 등으로 저효율이 생긴 것을 뜻합니다) 등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에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케인즈 주의의 한계를 비판합니다.

프리드먼 또한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습니다. 음의 소득세는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소득세율, 소득세 면제기준, 정부 보조금비율을 적용해 면제기준에 미달한 소득자는 그 차액에 비례해 정부 보조금을 받고 넘으면 세금을 내는 제도입니다.

어찌 보면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는 프리드먼이 이 같은 제도를 주장한 건 이상합니다. 돈을 주는 기본소득제는 사회주의적 정책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리드먼이 이 제도를 주장한 이유는 복지제도가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복지제도를 모두 없애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쥐어주자는 겁니다. 그러면 복지제도에 관여하는 정부의 영역도 줄어 자연스럽게 '작은 정부'가 될 것이라는 게 프리드먼의 생각이었습니다. 당장 사람이 죽어가는데 복지를 위한 돈을 안 쓸 수 없는 노릇이니, 효율을 늘리기 위해 복지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불필요한 조직을 모두 없애버리자는 거죠.

지금까지의 기본소득 논의와는 방향부터가 다른 색다른 시선입니다. 이는 최근까지 보수파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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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전세계로 확장되는 시작점,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시작한 미국의 기본소득 논의는 앞선 논의와 조금 다른 양상입니다. 기본소득은 본디 복지를 '잘' 해보자는 목적을 갖고 있었죠. 그러나 프리드먼 이후의 논의는 ⓵ 프리드먼처럼 '작은 정부'를 만들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⓶ 기술혁신이 몰고 온 대량실업의 대책을 위해 ⓷ 기존처럼 복지를 좀 더 제대로 해보기 위해 등으로 다양화 됩니다.

유럽에서는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복지국가 체제에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 1986년 기본소득 유럽네트워크가 결성되었습니다. 2004년엔 이 조직이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로 확대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기본소득은 수세기에 걸쳐 조금씩 변화해 온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다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죠. 기본소득이 주목 받은 이유는 각 시대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도둑질 한 이가 교수형에 처해지던 시대에는 너무 가혹한 법 때문에 무어가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프랑스 혁명시기엔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지구에 대한 권리를 생각하며 이가 많아지면서 푸리에의 아이디어가 탄생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에는 복지의 비효율을 지적하며 프리드먼의 아이디어가 나왔죠.

뉴스퀘어는 시대 순으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알아봤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각 시대별 아이디어, 여러분은 공감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