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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만큼 얻는다?

MMORPG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밸런스입니다. 플레이어가 노력해서 성취한 만큼 캐릭터가 강해져야합니다. 하지만 게임엔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합니다. 누군가는 노력한 것보다 더 가져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엄청난 노력과 성취에 비해 매우 조금 가져가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시작할 때부터 엄청난 현질(아이템이나 돈을 실제 돈을 주고 사는 것)을 통해 시작부터 막강한 능력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룰 때, 게임은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유지됩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한 만큼 성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모두가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어느 정도 밸런스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처럼 흥미와 의욕을 잃고 말죠. 우리 사회는 지금 밸런스가 잘 맞는 사회일까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좋은 대학에 갈까

학벌이라는 업적

우리사회엔 '학벌'이라는 업적이 존재합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해서 얼마만큼의 성적을 얻었느냐. 그리고 어떤 대학에 갔느냐에 따라 업적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업적의 수준은 대학 서열에 따라 배정됩니다. 수능 점수, 입학 성적에 따라 순서대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죠. 그리고 순위권의 대학에 갈 수록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사회적 명성, 더 높은 직위에 오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 같은 현실 뒤엔 '학벌'이 업적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서 학벌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집안에서 태어나도 노력과 성취를 통해 '학벌'을 얻으면 부를 얻고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죠.

학벌이 우리 사회에서 업적으로 작용한다는 건, 연구조사를 통해 수치적으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고용노동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비교 통계에 따르면 고졸 근로자의 평균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대졸 이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137에 달해 고졸보다 대졸의 임금이 37% 많았습니다. 단순히 고졸과 대졸간의 격차만 있는게 아닙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오호영 연구위원이 발표한 ‘청년층 취업난의 원인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학벌에 따른 사회적 보상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 1~10위 대학 출신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중위임금(290만원)은 21위 이하 4년제 대학 출신(수도권 200만원·지방 180만원)보다 90~110만원 많았습니다.

  • 11위~20위 대학 출신자의 중위임금은 240만원이었으며, 21위 이하 4년제 지방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의 중위임금은 180만원으로 같습니다.

우리가 주문처럼 외치는 '서연고서성한...'에 따라 연봉이 정해지는 겁니다.

과연 공정할까?

시장 원리가 독점을 배격하고 자유경쟁을 옹호하는 것처럼 업적주의는 귀속적 속성의 영향력을 배격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옹호합니다. '개인'의 능력과 성취. 그것이 업적주의의 기본 조건입니다. 따라서 학벌 또한 오롯이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얻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학벌은 과연 개인의 능력을 통해서만 얻어질까요?

국민일보가 한국장학재단의 자료를 토대로 통계를 낸 결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재학생 70%가량은 국가장학금 혜택이 필요 없는 소득 수준이었습니다. 저소득층은 10% 남짓이었죠.

사교육 시장이 매번 엄청난 규모로 뉴스에 보도되는 것만 봐도, 부모님의 경제력이 학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개인의 노력없이 학벌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따라서 학벌을 완전히 개인의 업적이라고 보기엔 불공정한 면이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아님에도 학벌이라는 제도를 통해 얻거나 잃는 게 많다면 공정한 세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평민은 평민으로 태어나고, 부자는 부자로 태어나고, 왕은 왕으로 태어나는, 조선시대의 계급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따라서 이러한 부분을 형평성있게 조절하는 게 제도가 할 일입니다.

형평성을 위해 미국엔 '적극적 우대조치'가 존재합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등장했습다. 흑인 · 히스패닉 · 여성 등 소수 인종 및 사회적 소수자에게 대학 입학 · 취업 등에서 혜택을 주는 제도입니다. 대입 전형 시 소수 인종 출신자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대학 입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그들에게 배정하는 방식이죠. 그동안 많은 손해를 입어온 계층에 의도적으로 이점을 주는 겁니다.

하지만 소수 인종에 대한 배려 때문에 오히려 성적이 우수한 백인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등 역차별을 유발시킨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점수가 더 높은 백인 학생이 자신보다 점수가 낮은 소수인종에 비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 우대조치'는 미국에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도 있죠. 여성 고용 할당제나 장애인 의무고용등도 적극적 우대조치 입니다. 우리사회에서도 이같은 제도들에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있습니다.

'적극적 우대조치'는 형식적인 차별금지 조치는 과거로부터 누적된 성차별, 인종차별 등을 고려합니다. 오랜 역사동안 누적되어온 차별이 존재한다는 거죠. 그러한 차별은 단지 과거에 작용했고 지금은 없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사회의 인식 속에 무의식적인 차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현재 서로 다른 출발선에 있다면, 단지 동시에 출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선 자체를 동일하게 맞추려는 적극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학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벌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만으로 얻어지는 공정한 격차라고 생각하시나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업적주의

우리 대부분은 개인의 노력과 성취에 따라 경제적 소득과 사회적 지위, 정치적 권력을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이를 ‘업적주의(meritocracy, merit system)'라고 합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믿음이죠. 과거엔 왕은 왕으로 태어나고, 노예는 노예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시민혁명 이후 사람들은 만인은 평등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업적주의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과 성취에 따라 경제적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등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죠. 노력하면 누구나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개인이 얻은 '업적'에 따라 차별적 보상이 이루어질 때 개인은 높은 성취동기를 갖게 되고, 사회 전체가 역동적으로 발전한다는 겁니다.

시작은 로크의 <소유권 이론>

비록 대지와 모든 열등한 피조물은 만인의 공유물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신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그 사람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신체의 노동과 손의 작업은 당연히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자연이 제공하고 그 안에 놓아둔 것을 그 상태에서 꺼내어 거기에 노동을 섞고(mix) 무언가 그 자신의 것을 보태면(join), 그럼으로써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 그것은 그에 의해서 자연이 놓아둔 공유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이 부가한 무언가를 가지게 되며, 그 부가된 것으로 인해 그것에 대한 타인의 공통된 권리가 배제된다.(27절)

존 로크, 통치론

업적주의의 맹점

현대사회에도 업적주의는 주요한 원리로 인정받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구직활동을 열심히 하고 능력 좋은 사람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뛰어난 사람일수록 잘먹고 잘살아야 합니다. '노력한만큼 받는다'는 업적주의는 우리사회의 기본 원리인거죠. 하지만 업적주의는 생각보다 허점이 많습니다. 가장 크게는 두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 (1) 개인의 능력과 성취를 누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2) '특정한' 업적은 오롯이 개인의 능력과 성취를 통해서 얻어진 것인가?

이 두가지는 업적주의의 큰 맹점입니다. (1)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선 보통 시장이 결정하곤 합니다. 그러나 과연 시장은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성취를 평가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쉽게 직장이나 사회에서 능력보다 많이 얻어가는 얌체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데도 시장이 마냥 합리적인 걸까요? 한편으론 우리의 능력은 수치화되지 않는 다는 겁니다. 만화 드래곤볼의 스카우터 마냥 능력치를 재어 준다면 편하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일을 잘한다고 말하는 것의 정확한 근거는 과연 존재할까요?

(2)의 문제도 매우 중요합니다. 업적주의가 왕은 왕으로 태어나고, 노예는 노예로 태어나던 과거에서 벗어나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요즘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자는 부자로 태어나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과연 오롯이 '당사자'의 능력과 성취를 통해 얻어지는 업적이 있을까요?

References (1)
  • 조형근 외 13명 좌우파사전

일찍 일어나는 새가 좋은 대학에 갈까

학벌이라는 업적

우리사회엔 '학벌'이라는 업적이 존재합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해서 얼마만큼의 성적을 얻었느냐. 그리고 어떤 대학에 갔느냐에 따라 업적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업적의 수준은 대학 서열에 따라 배정됩니다. 수능 점수, 입학 성적에 따라 순서대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죠. 그리고 순위권의 대학에 갈 수록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사회적 명성, 더 높은 직위에 오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 같은 현실 뒤엔 '학벌'이 업적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서 학벌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집안에서 태어나도 노력과 성취를 통해 '학벌'을 얻으면 부를 얻고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죠.

학벌이 우리 사회에서 업적으로 작용한다는 건, 연구조사를 통해 수치적으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고용노동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비교 통계에 따르면 고졸 근로자의 평균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대졸 이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137에 달해 고졸보다 대졸의 임금이 37% 많았습니다. 단순히 고졸과 대졸간의 격차만 있는게 아닙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오호영 연구위원이 발표한 ‘청년층 취업난의 원인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학벌에 따른 사회적 보상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 1~10위 대학 출신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중위임금(290만원)은 21위 이하 4년제 대학 출신(수도권 200만원·지방 180만원)보다 90~110만원 많았습니다.

  • 11위~20위 대학 출신자의 중위임금은 240만원이었으며, 21위 이하 4년제 지방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의 중위임금은 180만원으로 같습니다.

우리가 주문처럼 외치는 '서연고서성한...'에 따라 연봉이 정해지는 겁니다.

과연 공정할까?

시장 원리가 독점을 배격하고 자유경쟁을 옹호하는 것처럼 업적주의는 귀속적 속성의 영향력을 배격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옹호합니다. '개인'의 능력과 성취. 그것이 업적주의의 기본 조건입니다. 따라서 학벌 또한 오롯이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얻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학벌은 과연 개인의 능력을 통해서만 얻어질까요?

국민일보가 한국장학재단의 자료를 토대로 통계를 낸 결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재학생 70%가량은 국가장학금 혜택이 필요 없는 소득 수준이었습니다. 저소득층은 10% 남짓이었죠.

사교육 시장이 매번 엄청난 규모로 뉴스에 보도되는 것만 봐도, 부모님의 경제력이 학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개인의 노력없이 학벌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따라서 학벌을 완전히 개인의 업적이라고 보기엔 불공정한 면이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아님에도 학벌이라는 제도를 통해 얻거나 잃는 게 많다면 공정한 세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평민은 평민으로 태어나고, 부자는 부자로 태어나고, 왕은 왕으로 태어나는, 조선시대의 계급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따라서 이러한 부분을 형평성있게 조절하는 게 제도가 할 일입니다.

형평성을 위해 미국엔 '적극적 우대조치'가 존재합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등장했습다. 흑인 · 히스패닉 · 여성 등 소수 인종 및 사회적 소수자에게 대학 입학 · 취업 등에서 혜택을 주는 제도입니다. 대입 전형 시 소수 인종 출신자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대학 입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그들에게 배정하는 방식이죠. 그동안 많은 손해를 입어온 계층에 의도적으로 이점을 주는 겁니다.

하지만 소수 인종에 대한 배려 때문에 오히려 성적이 우수한 백인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등 역차별을 유발시킨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점수가 더 높은 백인 학생이 자신보다 점수가 낮은 소수인종에 비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 우대조치'는 미국에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도 있죠. 여성 고용 할당제나 장애인 의무고용등도 적극적 우대조치 입니다. 우리사회에서도 이같은 제도들에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있습니다.

'적극적 우대조치'는 형식적인 차별금지 조치는 과거로부터 누적된 성차별, 인종차별 등을 고려합니다. 오랜 역사동안 누적되어온 차별이 존재한다는 거죠. 그러한 차별은 단지 과거에 작용했고 지금은 없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사회의 인식 속에 무의식적인 차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현재 서로 다른 출발선에 있다면, 단지 동시에 출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선 자체를 동일하게 맞추려는 적극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학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벌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만으로 얻어지는 공정한 격차라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