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시선

만약 계속 회사에 다녔다면 김지영 씨도 몰카에 찍혔을 것이다. 다른 여직원들처럼 불안해하고, 병원에 다니고,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남자 직원과 그렇게 찍힌 사진을 돌려 보는 남자 동료들. “그런데 조사받은 남자 직원들이 우리한테 너무했대. 자기 들이 몰카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나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라온 사지 좀 본 거 가지고 성 범죄자를 만들려고 한다면서...” 화제가 된 책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단락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소설답지 않게 많은 각주가 달려있습니다. 통계청 자료, 여성가족부 누리집등이 그것이죠. 여성들에겐 일기장처럼 느껴지는 이윱니다. 오늘은 뉴스퀘어와 함께 우리 주변의 김지영씨들이 겪는 몰카 공포에 대해 알아봅시다.

어디에서도 피할 수 없는

“몰카를 숨기는 장소가 상상을 초월한다. 렌즈가 바늘구멍(1mm)만한 몰카까지 있다. 그래서 구멍이란 구멍은 다 훑어봐야 한다”

서울시 여성안심 보안관 김태성씨가 한 말입니다. 서울시가 지난해 8월부터 몰래카메라 범죄 예방을 위해 여성안심 보안관을 운영 중입니다. 이들은 공용 화장실이나 탈의실 등을 돌며 몰래카메라가 있는지 점검합니다. 전자파 탐지기, 적외선 탐지기까지 동원됩니다. 몰래카메라는 옷걸이, 시계 심지어 샤워기 구멍에도 설치돼있기 때문입니다.

2015년 여름엔 나사 모양 몰래카메라가 SNS를 통해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몰카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모양으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화장실은 두려움의 공간이 된 지 오랩니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어야 할 화장실이 여성들에겐 전혀 사적이지 못합니다.

단지 화장실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지하철 및 역이 24%로 가장 많고, 노상·유원지 14%, 주택가 11%, 목욕탕 6%, 상점·유흥업소 5%, 학교 2% 등입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범죄가 일어납니다. 여성들은 집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혼자일 수 없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도,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항상 누군가의 시선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몰카 판매 금지법

우리나라에서는 몰래카메라를 누구나 살 수 있습니다. 당장 초록색 검색창에 몰래카메라 구매를 검색하면 많은 정보가 나옵니다. ‘범죄 감시·예방’ 등 공익적 목적으로도 활용된다는 이유에섭니다. 하지만 총과 같은 무기들의 경우, 공익적 목적으로 살 때는 엄정한 관리를 받습니다. 몰카 범죄가 너무나도 많은 현실에서 제한없이 몰카를 파는 건 너무도 무책임합니다.

이 같은 문제인식에서 디지털 성폭력 고발단체인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이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에 제안했습니다. ‘국회톡톡’은 정치 스타트업 ‘와글’과 온라인 개발자 조합 ‘빠흐티’,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가 개발했습니다.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입법 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1000명의 지지를 받으면 입법안이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 의원에게 전달됩니다.

‘몰카판매금지법’은 국회톡톡에서 1만 8천여 명이 지지했습니다. 몰카 구매에 대한 전문가 제도 마련, 전문가 외 몰카 소지 불법화등을 제안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진선미 의원과 남인순 의원등이 국회톡톡의 제안을 받고 몰카판매금지법 입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몰카 판매 금지법을 넘어서

지난 2015년 소라넷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강간모의, 강간, 몰래카메라까지 충격적인 사실들이 알려졌고 결국 폐쇄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라넷이 없어졌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성매매·음란정보 시정요구 현황을 살펴보면, 2015년 5만여 건, 2016년 8만여 건이었습니다. 소라넷이 사라지고 나서도, 몰래카메라나 리벤지포르노(헤어진 연인에게 앙심을 품고 유포한 성관계 동영상)등이 끝도 없이 퍼지고 있습니다. 소라넷을 없애도 소라넷의 컨텐츠는 살아있는 셈입니다. 과연 몰래카메라 판매를 금지하면 몰래카메라 컨텐츠도 사라질까요.

지난해 10월 영국 일간지 ‘더 선’은 한국의 몰카 문화를 보도하며 이렇게 평했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나라이며 여성 인권 지표는 초라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자랑하는 발달한 기술 문화는 기술에 빠삭한(tech-savvy) 일군의 변태들을 낳았다.”

몰카 방지법은 ‘발달한 기술 문화’를 제제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제제해야 완전한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무엇을 뜻할까요? 몰카 컨텐츠가 소비되는 문화아닐까요.

시선의 연장선

그 문화를 알기 위해선 몰카가 여성을 보는 시선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몰래카메라가 범죄는 단순히 '벗은 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옷을 입고 있어도 카메라 렌즈는 들이밀어집니다. 벗었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성적 대상인지가 더 주요한 거죠. 카메라의 시선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몰카가 단순히 ‘허용되지 않는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에 문제인 건 아닙니다. 몰래카메라의 시선 그 연장선엔 상대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그 시선은 대상을 인격체가 아닌 잠자리가 가능한 대상으로서만 보고 있습니다.

그 시선을 담은 몰카 영상이 유통되는 건, 찍는 사람만큼이나 보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시선들이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있기에, 그 시선의 선상에서 몰카영상이 생성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선의 연장선엔 소비자로서 우리가 있는 건 아닐까요?

이쯤되면 내가 김지영인지, 김지영이 나인지 헷갈릴 정도다. 김지영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 작가 조남주-

도입부에 얘기되었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몰카 범죄가 나옵니다. 이 책엔 수많은 여성들이 공감합니다. 김지영씨에 공감하는 그들은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우리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이지요. ‘여성으로서의 삶’은 우리 주변의 여성들에게 ‘몰카 위협에 노출되는 삶’과 동치 되기도 합니다. '몰카 위협에 노출되는 삶'이 사라지지 않는 건, 대부분의 시선이 몰카의 시선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선의 연장선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