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에’ 계층사다리는 무너졌다

“야들아 내가 너희들의 롤 모델이다. 그런데 왜 나를 싫어하냐?” 제19대 대선에 출마한 ‘서민 대통령’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일부입니다. 그는 “흙수저 출신으로 무학인 아버지와 문맹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고 유산 1원도 받지 않고 독고다이로 검사, 국회의원, 집권당 원내대표, 당대표, 경남지사, 보수본당 대통령부호까지 된 사람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곤 자신 있게 이 땅의 청년들에게 자신이 ‘너희들의 롤 모델’이라고 말합니다. 윗글은 정작 청년들에게 ‘대표적인 꼰데식 발언’이라며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기성세대의 성공신화와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20,30대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한국사회에서 ‘노오력’으론 흙수저에서 금수저가 될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을 활용해 홍준표 후보의 논리에 적극적으로 반론해보겠습니다.

fdecomite, flickr (CC BY)

용의 씨는 골고루 뿌려져 있다, 다만 개천에선 더는 용이 나오지 않을 뿐

기성세대의 전제조건, ‘너희는 노오오력이 부족해’

5060세대에게 귀 아프게 들어오던 전형적인 성공신화가 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우유배달, 신문 배달 등 온갖 잡일로 학비를 벌고, 성공한 장남 혹은 장녀가 동생들을 책임지고,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출세했다는 이야기. 노력하면 검사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엔 평등한 교육의 기회가 전제돼 있습니다. 모두에게 같은 교육기회가 제공되기에 공부를 통한 계층상승은 개인의 노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선 ‘평등한 기회’라는 교육의 전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개천에선 더 이상 용이 나올 수 없다

진정한 경쟁사회의 첫 발판이라 불리는 ‘상위권 대학 진학’ 과정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지역별, 고등학교 유형별 상위권 대학 진학 확률은 부모의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등록금이 일반고의 몇 배 되는 서울시 외고와 과학고의 서울대 입학 확률은 일반고보다 열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문제는 서울시 일반고 내에서도 어느 구에 속하는가에 따라 서울대 입학 확률이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는 논문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2017 06 03    8.22.51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 김세직
서울시 자치구별 서울대 합격확률

서울 내에서 강북구, 금천구, 구로구의 일반고에서 서울대에 들어갈 확률(최초합격 기준)은 각 100명당 0.1명, 0.2명, 0.2명인데 비해 강남구의 일반고에서의 확률은 무려 그 10배에서 20배에 달하는 100명당 2.1명에 이릅니다. 일반고는 입학시험이나 선발권이 없다는 점에서 지역 간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건 교육이 더 이상 계층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70년대 자주 등장하던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보다 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이 쉽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 OECD 조사를 보면 정반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학력·소득이 자녀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44점)이 미국(33점)·덴마크(34점)·영국(37점)·일본(42점)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선진국은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역방향으로 가고 있는 점 역시 문제입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학생 개인의 노력으로 깰 수 있는 벽은 높아지게 됩니다. 금수저는 금수저끼리, 흙수저는 흙수저끼리 경쟁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 직업과 계층까지 대물림 되다니요

부모의 직업세습 역시 강해지는 추세입니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는 직간접적으로 자녀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간접적으로는 교육환경에 해당하는 인적자본 축적(학업성취), 직접적으로는 임금과 직업이 이에 해당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Ⅱ’를 보면, 아버지의 직업과 아들 직업을 교차분석 해보니 아버지의 직업이 관리전문직이면 아들의 직업도 같은 비율이 42.9%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직업의 세습이 매우 강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양쪽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단순노무직과 관리전문직에서 특히 직업계층의 세습이 강하게 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15세 무렵 본인의 주관적 계층과 현재 주관적 계층 간의 교차분석 결과, 아버지 세대의 계층과 무관하게 자식 세대가 하층 또는 중산층이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습니다.

아이들은 용을 꿈꾸지도 않는다

     2017 06 03    8.28.03
<한국의 사회동향>, 통계청 통계개발원

교육사다리가 무너지고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상태가 굳어질수록 사람들은 ‘무력함’에 빠지게 됩니다. 지난 2월 말, 닐슨 코리아가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 사회 공정성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19~29세의 청년층의 ‘계층 역전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19.3%로, 전 연령에서 가장 낮았다고 합니다. 20대 이하 청년층만이 유일하게 20% 이하의 수치를 보인다는 점에서 청년들이 어느 정도의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통계청에서 작년에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16>에서도 결혼·출산 결정 연령대인 30대에서 70% 가까이가 자식이 스스로 노력해도 높은 계층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부서진 계층 사다리는 현재 청년층과 그 아래 세대 학생들의 무력감과 결코 분리해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십여 년간 장기불황으로 취업 빙하기였던 일본은 청년들의 몸에 밴 무력감을 경제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았습니다. '프리터족(族), 패러사이트 싱글(부모에게 얹혀사는 독신)….'등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청년들이 장기적인 실업 상태로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어버린 탓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다’라는 이유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증명해내는 연구는 차고 넘칩니다. 과연 언제까지 교육을 계층사다리의 통로로 해석하며 개인의 노력을 강조할 수 있을까요. 이미 대한민국 청년들은 '헬조선', '이생망'등의 신조어로 자기위안을 삼고 있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