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젊은 노동자의 죽음

지난 2016년 10월, 예기치 못한 곳에서 허망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tvN 막내 PD의 죽음. 작년에 벌어진 사건이 재조명받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이 아니면 주목하지 않는 잘못된 구조 vs 단순한 개인의 부적응으로 몰아가려는 회사측의 태도. 평화시장에 죽음을 택한 노동자로 인해 변화가 일었던 것처럼, 막내 PD의 죽음 역시 잘못된 구조에 변화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움엔 끝이 없다는 tvN, 그 안에서 인생을 끝낸 막내 PD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을까

혹독한 노동강도

촬영일 55일 중 휴일은 단 2일. <혼술남녀> 종방 이튿날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고 이한빛PD는 촬영 내내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제작팀이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첫 방송 직전 계약직 다수를 정리해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70분짜리 드라마 2편을 1주일 동안 찍었습니다. 고 이한빛 PD 어머니 김씨는 “촬영에 들어간 이후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 들어왔고 집에 들어와서도 2시간을 자고 다시 나가 몸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됐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집에 잠깐 들린다던 귀가시간은 대부분 새벽 4시 이후, 그리고 촬영장으로 다시 향한 시각 새벽 6시였습니다.

신념과 맞지 않은 불합리한 일

촬영팀에 계약파기를 알리고 계약금을 환수받는 일은 막내 PD의 몫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는 평소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입사한 이후 1년 동안 세월호 가족, 해고당한 KTX 승무원 등을 자기 원급을 털어 후원할 정도였습니다. 유족들은 그가 자신의 손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교체하고 금액을 환수하는 것에 대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고 이한빛PD의 동생인 이한솔씨는 “촬영팀이 바뀐 것은 촬영팀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혼술남녀>팀의 시스템상 잘못이었는데 계약직들의 책임으로 넘어가고, 그 상황에서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을 괴로워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2016년 10월 1일, 이PD가 선임 PD와 대화한 내용이 녹음된 녹취파일을 보면 촬영팀 교체 건에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자 선임 PD가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촬영 기간 동안 발신 통화 건수만 1,547건. 1일 최대발신 건수 94건. 계약 해지된 촬영팀과 CJ 측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껴있던 이PD의 상황이 담긴 수치입니다.

죽음, 그 이후의 시간

고 이한빛PD의 장례식 이후 유가족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팀이 마련됐습니다. 몇 차례 회사와의 면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5개월 동안 회사 측의 주장은 같았습니다.

△유가족의 조사 참여 거부, 내부적인 자체조사 고집
△근무 강도, 출퇴근 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 공개 거부
△이 PD 주변 인사의 주관적 진술만을 토대로 '근무태만' 등을 강조하는 모습.

변화가 없자 지난 4월 17일, 이한빛씨 동생 이한솔씨는 페이스북에 “즐거움의 ‘끝’이 없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대기업 CJ. 그들이 사원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라는 장문의 글을 게시했습니다. 이 글은 페이스북에서 공감 1500여 건, 공유 수 550건을 기록하며 고 이한빛PD의 죽음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부모 가슴에 대못 박은 CJ 측의 태도

죽음 이후의 CJ 측의 태도는 유가족을 다시 한번 분노케 했습니다. CJ 측에서 고 이한빛PD의 죽음을 알아챈 건 그에게 있던 법인카드를 찾던 와중이었습니다. 고 이한빛PD의 어머니 김씨는 “아들의 실종 사실을 알고 tvN에 찾아가 선임 PD를 만났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간 넘게 한빛이 불성실했고 비정규직을 무시해 갈등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면서 “나중에 한빛이의 유서를 보니 이 선임 PD의 말이 철저한 책임회피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했습니다.

결국은, 구조적인 문제

저비용 고효율을 위한 제작진의 희생

업계 관계자들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드라마 제작환경 탓이라 말합니다. 지상파와 몇몇 주요 외주 제작사들이 만들던 드라마 제작이 케이블채널로 확대되면서 충분한 제작비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비용 고효율’. <혼술남녀>가 적은 비용으로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얻었기에 붙은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고효율이 가능했던 데에는 고 이한빛 PD와 같은 제작진의 강요된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작에 참여하는 스태프는 적으면 20명, 많으면 100명입니다. 하루 촬영비용은 수천만 원대고요. 제작사 입장에서 24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촬영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대한 압축적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일을 맡은 스태프들은 자연스레 이 일정에 맞춰 강행군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초과 시간이 발생하면 그만큼 인건비가 지출되기 때문입니다. 고 이한빛PD가 촬영 55일 동안 2일밖에 쉬지 못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미래가 ‘더’ 암울한 케이블 PD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은 ‘사람을 길러내는 방식’에 있어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PD는 향후 메인 프로듀서로 성장할 것을 전제로 사람을 키워내는 구조라고 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위 입봉(메인프로듀서로 첫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CJ의 경우엔 지상파 방송에서 활약한 스타 프로듀서들을 영입해 드라마를 만들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 이한빛PD처럼 공채로 채용된 이들은 스타 PD의 업무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입봉 기회는 불확실해집니다. 불합리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미래의 기회조차 이PD에겐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방송사만의 일? 아니 우리의 일!

‘원래 그 일은 그래’ ‘다들 그래 왔으니 조금만 참아’ 사회생활 초년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참고 참아 밑으로 내려온 결과, 죄책감과 책임은 모두 막내PD의 몫이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막내는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곳은 결코 작은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목받는 예능과 드라마를 만드는 CJ E&M이었습니다. 한 막내 PD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