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Stories

신장개업한 트럼프의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새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자신의 대선 공약을 하나씩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설마 트럼프가 되겠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것들이요. 설마 했던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었고 설마 했던 공약들도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U.S. Department of Defense Current Photos, flickr (CC BY)

이민자 막은 이민자의 나라

자유와 기회의 땅인 미국이 국경을 걸어 잠갔습니다. 이번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 만에 서명한 행정명령 탓입니다.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무슬림 국가들을 대상으로 미국 입국을 금지한 것인데요. 이미 발급된 10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 이민자의 비자도 취소되었습니다. 이들 국가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안보를 위한 '작은' 대가?

이번 행정명령은 특정한 국가 출신의 입국을 일시적이지만 직접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무슬림 7개 국가(이라크, 시리아, 이란,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는 최소 90일간은 미국을 입국할 때 필수적인 비자 발급이 중단되며 입국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구로 따지면 1억 3천 4백만 명이 그 대상입니다. 앞으로 120일 동안은 시리아의 난민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었죠.

트럼프의 생각은 단순합니다. 이슬람 신도를 뜻하는 무슬림은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매우 위험한 사람들인데 이들이 미국에 대해 어떤 감정과 목적을 가지고 입국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죠. 미국을 테러 등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단 이 사람들이 미국에서 돌아다니는 것부터 막자는 겁니다. 종교와 인종 차별로 인한 문제보다 미국인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가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이죠.

공황장애 온 전 세계 공항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국가의 관문인 공항에서부터 큰 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장 375명이 미국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하거나 미국 공항에 도착해 억류되었습니다. 에미레이트와 카타르 항공 같은 중동 국적의 항공사들은 7개 국가 출신의 승무원 배치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항공사 승무원도 행정명령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뉴욕 JFK 국제공항 등에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수천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모여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우리도 미국인 안 들인다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것에 분노한 이란은 즉각 보복에 나셨습니다. 미국인에게 더 이상 비자를 발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데요. 지난 2015년에 이란과의 핵 협상이 타결되면서 좋아졌던 사이가 다시 벌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영국에선 올해 중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취소하라는 온라인 청원이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영국 국민 185만여 명이 서명을 한 데에 이어 무슬림 이민자 출신인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내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미국 내 각계각층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대선 맞수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 라고 말했고,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은 “자유의 여신상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개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조차 오히려 무슬림을 자극해 미국 내 테러가 늘어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민주당 내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6개 주 법무장관들도 헌법을 위반하는 비미국적인 결정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인재를 놓칠까 걱정하는 기업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창업자를 포함한 임직원 중에서 이민자 비중이 높은 IT 기업들이 적극적입니다. 구글은 우리 돈 47억 원을 들여 이민자, 난민 기금을 조성하고 해외에 나가 있는 직원들을 즉시 귀국하도록 했습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최고경영자가 나서 행정명령에 영향을 받는 직원들의 소송절차를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순 없다

국경을 넘나드는 거센 비판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낸 법무부 장관 대행을 경질하는가 하면 행정명령이 잘못되었다는 판결을 내린 1심과 2심 판사들에게도 인신공격성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개입하는 건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그가 새로 임명한 이민관세국장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습니다.

“일개 판사가 우리나라를 그렇게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와 사법체계를 비난하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브레이크 밟은 법원

의회의 역할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법원의 무효 판결뿐입니다. 지난 2월 초,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에서는 행정명령 시행을 미국 전역에서 중단하라는 판결이 나와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이 다시 허용되었습니다. 법무부는 납득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했지만, 연방항소법원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습니다. 재판 결과를 받아든 트럼프는 판사들을 비판하며 대법원까지 가서 끝판을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즌 2로 다시 돌아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정된 내용이 담긴 반이민 행정명령 2탄을 준비 중입니다. 앞서 두 번이나 퇴짜맞은바 있는 기존의 행정명령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기엔 부담이 있다는 것이 배경인데요. 새롭게 발표될 행정명령은 다소 완화된 수준에서 나올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국내 여론은 트럼프에게 유리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가운데 일부 규제에선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요. 불법체류자를 보호하는 도시에는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끊어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이민법을 전반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도 77%에 이릅니다. 국민 다수가 불법 이민에 대한 문제의식과 제도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상황이죠. 그가 곧 내놓을 행정명령 2탄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공호흡기 단 오바마 케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 단상에서 내려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뭘까요?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책에 손을 대는 일로 공식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건강보험개혁안인 오바마 케어를 손보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건데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 1호로 오바마 케어가 찍힌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오바마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트럼프의 시대가 왔다는 출사표와 같죠.

여기서 잠깐, 행정명령이란?

행정명령은 행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권한 중 하나입니다. 의회를 거치지 않고도 대통령이 서명하면 법적인 효력을 갖습니다. 다만, 행정명령만으로 기존에 제정된 법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후임 대통령이 얼마든지 취소할 수 있다는 한계도 있죠. 그래서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밀고 있는 정책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364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91건, 오바마 전 대통령은 277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누구나 저렴하게 병원을, 오바마 케어

오바마 케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Barack Obama)과 건강보험을 뜻하는 헬스케어(Health Care)를 조합한 말입니다. 한국에선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는 건강보험제도가 미국에는 없었습니다. 저소득층은 민간 보험업체에 비싼 보험비를 낼 여유가 되지 않아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웠죠. 오바마 케어는 미국 국민 전체를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시키고 소득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해 보다 많은 사람이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정책입니다. 현재 미국인 2,200만 명이 가입했습니다.

트럼프도 이유는 있다

트럼프가 반대하는 명분은 있습니다. 현재의 오바마 케어는 의료보험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까지 의무적으로 가입시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인데요. 캘리포니아주에선 2017년 기준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695달러(약 80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정부의 재정부담이 커지는 것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건강보험료가 계속 오르면서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보조금도 늘고 있는데요. 2023년까지 오바마 케어에 2조 달러가 추가로 투입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바마 케어는 게임오바?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대로 당장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기존 오바마 케어 가입자를 위한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도 아직 실체가 명확하지 않죠. 그가 서명한 행정명령에 이런 고민이 드러납니다. 오바마 케어 폐지를 전제하고는 있지만 일단은 여러 의무 규정을 완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오바마 케어가 강제하고 있는 조항을 따르지 않았을 때 받는 처벌을 줄여주는 식입니다. 보험 가입을 집행하는 주 정부와 관련 보험회사, 병원들에 자율성을 주자는 취지인데요. 대선 후보 시절 내내 재앙과도 같은 오바마 케어를 당장 폐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 치고는 한 발짝 물러선 모양새입니다. 물론 상원과 하원을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의회 승인을 거쳐 오바마 케어가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바마 케어를 추진하던 당시에도 공화당의 반대가 정말 심했습니다.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2013년에는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일까지 겪었죠. 그런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이, 그것도 트럼프 같은 강성 인물이 ‘오바마의 정치적 유산’을 가만히 두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에겐 그가 지적해 온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식을 제시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냥 오바마 케어가 싫은 건지,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건지는 금방 드러나겠죠.

쌍코피 터진 TPP

오바마 케어를 손보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 그의 책상 위에 또 다른 안건이 올라왔습니다. TPP라고 불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에서 탈퇴한다는 행정명령이었죠. 대선 후보 시절 내내 TPP를 ‘미국의 재앙’이라고 하더니 실천도 빨랐습니다. 7년 동안 애써서 타결된 TPP가 졸지에 재앙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TPP부터 알고 가자

TPP(Trans-Pacific Partnership)는 미국과 일본, 호주 등 12개 국가가 맺은 다자간 무역 협정을 말합니다. 거대한 태평양을 가운데 둔 세계지도를 떠올려 봅시다.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는 북미와 남미 그리고 아시아의 일부 국가가 TPP에 참여했습니다. (미국, 캐나다, 페루, 칠레,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폴, 브루나이, 베트남) TPP 참여 국가들의 국내총생산을 합치면 전 세계의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세계 경제 대국 1위 미국과 3위 일본이 껴있는 덕분이죠.

협상을 끝내고 시행을 약속한다는 의미의 타결은 이미 2015년에 이뤄졌습니다. 그 이후엔 각국의 국회나 국가원수로부터 승인을 받는 비준이 필요합니다. 현재 TPP는 일본만 비준한 상황입니다. 한국도 미국으로부터 참여를 요청받았지만, 타이밍을 놓쳐 거부당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는 뼛속까지 애국자?!

트럼프 대통령이 TPP에서 탈퇴한 건 보호무역주의 조치 중 하나입니다. 국가가 무역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자유무역주의와 대비되는 말입니다. 이런 보호무역주의는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최우선시하겠다는 미국 우선주의의 경제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간판과도 같죠. 그동안 미국이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희생을 치뤄왔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 결정은 하지 않겠다는 거죠.

무역적자, 댓츠 노노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간 협정인 TPP가 미국에 불리하다고 봅니다. 그 배경이 있습니다. 우선,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합니다. 수출보다 수입이 많으면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는데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줄곧 적자입니다. 지난해 무역적자 규모가 5,022억 달러(우리 돈으로 약 574조 원)에 달해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TPP같이 다자간 맺은 무역협정은 미국의 이익을 보장할 수 없고 최악의 무역 적자를 더 키운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무역 정책을 개혁해 자신의 공약을 지키는데 들어갈 재원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제조업부터 제조한다는데

특히 미국에선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자유무역을 확대하면서 미국 내 많은 생산 공장들이 해외로 나갔습니다. 주민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공업지대였던 미국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 지역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죠. 지난해 제조업 무역수지 적자가 7,500억 달러(우리 돈으로 약 857조 원)에 이릅니다. 전체 무역수지 적자가 이보다 적은 이유는 서비스업에서 나온 흑자 덕분입니다. 1979년 1,960만 개였던 제조업 분야 일자리도 지난해엔 60% 수준인 1,230만 개로 대폭 줄었죠. 트럼프 대통령은 TPP 협정으로 값싼 제품이 미국 시장에 더 많이 들어오면 무역수지 적자 폭은 더욱 커지고 공업 지역의 경제도 다시 일으키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땡스 투 백인 노동자

미국의 공장과 노동자를 챙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엔 정치적인 목적도 깔려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스트 벨트 지역에 사는 저학력 백인 유권자의 강력한 지지로 당선되었습니다.이들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상당 부분 유지할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아닌 자신들의 일자리를 되찾아 줄 것 같은 트럼프 후보에게 희망을 걸어본 겁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하고 산업 구조가 급격히 바뀌면서 임금은 늘지 않고 일자리만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인해 시장이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것도 지켜봐야 했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자신의 든든한 지지층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방금 한 일은 미국 노동자를 위한 위대한 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동공지진난 가입국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TPP 협정 중단을 선언하자 기존 가입국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가장 급해 보이는 건 TPP의 최대 수혜국으로 뽑히던 일본입니다. 일본은 TPP 가입국 경제 규모에서 65%나 차지하는 미국이 빠지면 의미가 없다며 미국이 다시 TPP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멕시코, 싱가포르 등도 미국 없는 TPP엔 고개를 젓고 있죠. 호주와 캐나다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를 새로 끌어들여 TPP를 계속 추진하자는 입장입니다. 당분간은 TPP 가입국 간의 혼선이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겐 남 일?

전체 수출 중 미국을 상대로 한 비중이 두 번째로 큰 한국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TPP에 가입하지 않은 한국은 이번 행정명령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진 않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TPP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같은 다자간 무역협정 대신 국가별로 일대일 무역 협정을 다시 체결하겠다고 나셨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맺은 FTA도 그의 눈엣가시입니다. 대선 기간 후보 시절에는 한미 FTA를 두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재앙이자 킬러라고 비판하기도 했죠. 한미 FTA는 이미 2012년에 비준된 조약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는 의미의 발효가 된 상태입니다. FTA를 뜯어고치기 위해선 의회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죠. 하지만 그가 취임 후 보여준 성미로 볼 때,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얼마 전 열린 한국 경제학 학술대회는 한미 FTA 재협상으로 한국이 5년간 269억 달러(우리 돈으로 약 31조 원)의 손실을 보고 24만 개의 일자리를 잃는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한미 FTA 말고도 환율조작국 지정, 지적 재산권 보호 강화, 비관세 무역장벽 강화 등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앞에 두고 만지작거릴 카드는 많은데요. 세계 경제에 보호무역주의 분위기를 주도해 한국과 교역하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도 한가롭게 지켜볼 수만은 없겠네요.

이민자 막은 이민자의 나라

자유와 기회의 땅인 미국이 국경을 걸어 잠갔습니다. 이번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 만에 서명한 행정명령 탓입니다.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무슬림 국가들을 대상으로 미국 입국을 금지한 것인데요. 이미 발급된 10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 이민자의 비자도 취소되었습니다. 이들 국가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안보를 위한 '작은' 대가?

이번 행정명령은 특정한 국가 출신의 입국을 일시적이지만 직접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무슬림 7개 국가(이라크, 시리아, 이란,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는 최소 90일간은 미국을 입국할 때 필수적인 비자 발급이 중단되며 입국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구로 따지면 1억 3천 4백만 명이 그 대상입니다. 앞으로 120일 동안은 시리아의 난민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었죠.

트럼프의 생각은 단순합니다. 이슬람 신도를 뜻하는 무슬림은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매우 위험한 사람들인데 이들이 미국에 대해 어떤 감정과 목적을 가지고 입국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죠. 미국을 테러 등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단 이 사람들이 미국에서 돌아다니는 것부터 막자는 겁니다. 종교와 인종 차별로 인한 문제보다 미국인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가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이죠.

공황장애 온 전 세계 공항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국가의 관문인 공항에서부터 큰 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장 375명이 미국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하거나 미국 공항에 도착해 억류되었습니다. 에미레이트와 카타르 항공 같은 중동 국적의 항공사들은 7개 국가 출신의 승무원 배치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항공사 승무원도 행정명령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뉴욕 JFK 국제공항 등에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수천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모여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우리도 미국인 안 들인다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것에 분노한 이란은 즉각 보복에 나셨습니다. 미국인에게 더 이상 비자를 발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데요. 지난 2015년에 이란과의 핵 협상이 타결되면서 좋아졌던 사이가 다시 벌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영국에선 올해 중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취소하라는 온라인 청원이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영국 국민 185만여 명이 서명을 한 데에 이어 무슬림 이민자 출신인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내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미국 내 각계각층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대선 맞수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 라고 말했고,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은 “자유의 여신상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개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조차 오히려 무슬림을 자극해 미국 내 테러가 늘어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민주당 내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6개 주 법무장관들도 헌법을 위반하는 비미국적인 결정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인재를 놓칠까 걱정하는 기업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창업자를 포함한 임직원 중에서 이민자 비중이 높은 IT 기업들이 적극적입니다. 구글은 우리 돈 47억 원을 들여 이민자, 난민 기금을 조성하고 해외에 나가 있는 직원들을 즉시 귀국하도록 했습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최고경영자가 나서 행정명령에 영향을 받는 직원들의 소송절차를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순 없다

국경을 넘나드는 거센 비판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낸 법무부 장관 대행을 경질하는가 하면 행정명령이 잘못되었다는 판결을 내린 1심과 2심 판사들에게도 인신공격성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개입하는 건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그가 새로 임명한 이민관세국장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습니다.

“일개 판사가 우리나라를 그렇게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와 사법체계를 비난하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브레이크 밟은 법원

의회의 역할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법원의 무효 판결뿐입니다. 지난 2월 초,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에서는 행정명령 시행을 미국 전역에서 중단하라는 판결이 나와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이 다시 허용되었습니다. 법무부는 납득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했지만, 연방항소법원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습니다. 재판 결과를 받아든 트럼프는 판사들을 비판하며 대법원까지 가서 끝판을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즌 2로 다시 돌아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정된 내용이 담긴 반이민 행정명령 2탄을 준비 중입니다. 앞서 두 번이나 퇴짜맞은바 있는 기존의 행정명령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기엔 부담이 있다는 것이 배경인데요. 새롭게 발표될 행정명령은 다소 완화된 수준에서 나올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국내 여론은 트럼프에게 유리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가운데 일부 규제에선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요. 불법체류자를 보호하는 도시에는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끊어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이민법을 전반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도 77%에 이릅니다. 국민 다수가 불법 이민에 대한 문제의식과 제도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상황이죠. 그가 곧 내놓을 행정명령 2탄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