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백지신탁(Blind Trust)

Gage Skidmore, flickr (CC BY)

美 역대 최고 부자 대통령의 자산 정리, 가능할까?

미국의 역대 최고 부자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스스로 밝힌 재산만 해도 100억 달러(11조 6900억 원)에 그가 소유하거나 지분을 갖고 있는 빌딩은 42개, 그가 운영하고 있는 트럼프그룹은 최소 18개국에 111개가 넘는 법인을 운영 중입니다. 음료수 사업부터 카지노, 리조트, 골프장까지. 사업 분야도 다양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재산을 백지신탁해라"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이 많은 재산을 ‘백지신탁’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었습니다. 단순히 돈만 많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트럼프는 해외에서 500개 이상의 기업들과 거래 관계로 얽혀있는 사업가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통령 직무와 개인 이해관계가 뒤섞이는 ‘이해충돌’이 발생할 것이라는 의혹은 아주 자연스러운 발상이죠. 그가 (그래선 안되겠지만...) 외교를 비즈니스에 활용할 경우 세계적 차원의 정경유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백지신탁이란 공직자가 재임기간에 재산을 ‘공직과 무관한’ 대리인에게 맡기고 일체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입니다. 백지신탁제도를 처음 도입한 나라가 바로 미국인데요. 미 연방법은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를 막기 위해 재산을 백지신탁하거나 처분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규정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역대 대통령들은 어떻게 했을까?

 
규정대상은 아니지만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미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재임기간동안 자발적으로 재산을 독립적인 신탁관리자에게 위임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이해충돌 문제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이렇게 처신한 것이죠.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700만달러(약 83억원) 규모의 재산과 주식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트럼프도 이런 움직임을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죠.

게다가 트럼프는 이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대통령의 직무와 사업가의 직무를 확실히 구분 못하는 모습을 보인 건데요. 때는 지난 달 15일.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으로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인도 부동산 개발업자 3명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인도 뭄바이 남쪽에 트럼프의 이름을 붙인 호화 아파트 단지(한채당 200만달러 상당)를 짓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이었습니다. 이들과 만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었을지 ‘트럼프그룹 오너’였을지 ‘둘 다’였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트럼프 사업의 지주회사 격인 트럼프오거니제이션은 트럼프 당선 직후 대형 옥외 광고판을 통해 당선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우루과이에 있는 ‘트럼프 타워 푼타 델 에스테’ 광고도 함께 말입니다. 이처럼 트럼프는 자신과 그룹을 분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였습니다.

트럼프의 입장은?

 
트럼프는 한 동안 오락가락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달 30일에서야 백지신탁을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습니다. 30일 새벽 트위터에 백지신탁을 하겠다는 멘션을 남긴 겁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국정에 온전히 몰두하기 위해 나의 위대한 사업에서 물러날 것이며 이를 위한 법적 서류작업을 하고 있다”

“법적으로 그렇게 할 의무는 없지만, 대통령으로서 직무가 내 여러 사업과 조금이라도 이해 충돌 소지가 생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하지만 아직 이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이릅니다. 트럼프는 후보자였을 때 백지신탁을 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당선된 이후에 백지신탁은 없다며 입장을 바꾼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실행여부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자신의 맨션대로 백지신탁을 한다고 해도 문제는 있습니다. 그간 트럼프의 발언들을 종합해봤을 때 백지신탁 방식은 자신의 성인 자녀 3명(장남 트럼프 주니어, 장녀 이방카, 차남 에릭 등)에게 그룹을 물려주는 식으로 진행될 텐데요. 이를 백.지.신.탁.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백지신탁이란 ‘공직과 무관한 제 3자’에게 자신의 재산을 신탁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자녀들이 그룹을 물려받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가 돼 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